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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아메리카가 원산지인 고추는 한국에 17세기 초엽에 전래된 식품이다.
<지봉유설>에 고추가 일본에서 전래되어 왜겨자[倭芥子]라고 한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일본을 거쳐 한국
에 전해진 것으로 추측된다.
고추의 원산지는 아메리카 대륙으로 알려진다. 일찍이 아메리카 대륙의 멕시코 고원과 안데스 고원에서 발견된
고추의 야생종은 서기전 6600∼5500년 사이에 걸치는 시기의 것이다. 만약 이 시기 이후 인공재배가 이루어졌다면
고추는 아메리카 대륙의 두 곳을 유전적 중심지로 하여 여러 가지의 종류로 퍼져 나갔음을 추정할 수 있다.
1492년 콜롬부스에 의해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된 이래 이 두 곳의 고추 품종은 점차 서유럽 대륙으로 전해졌다.
이미 마야와 아즈텍이란 문명을 건설했던 원주민들은 유럽인들이 그들의 땅에 발을 들여놓기 전부터 고추를
약용이나 음식의 조미료로 사용했다. 특히 음료인 초콜릿에 고추를 넣어서 짜릿하고 기분 좋은 자극을 증가시킨
음료를 즐겨 마셨다.
아메리카 대륙 발견 이후 고추는 스페인인과 포르투칼인에 의해 유럽의
리스본에 당도했다. 그리고 다른 부류의 포르투칼인에 의해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와 르완다에 전해졌다. 리스본에 도착한 고추는 포르투칼인에
의해서인도의 서부지역에 소개되었고 여기서 다시 두 갈래 길로 나누어져
다른 지역으로 전해진다. 하나의 길은 오스만투르크제국의 인도서부 침략에
의해 오늘날의 헝가리에 전해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포르투갈 상인에
의해 동남아시아 및 중국의 마카오로 전해지는 길이다. 이것이 다시 표류
하던 포르투갈 상선에 의해 일본의 나가사키(長崎)로 들어온다.
그때가 바로 1543년 일본력 천문(天文) 12년으로 조총이 일본열도에 상륙한
사건과 같은 때이다.

그후 부산의 동래에 있었던 왜관을 통해 나가사키와 츠시마(對馬島)의 왜인들에 의해 고추가 한반도에 들어온다.
조선 중기의 선비 이수광(李?光:1563∼1628년)은 1613년에 펴낸 《지봉유설(芝峯類說)》에서 “남만초는 센 독이
있는데 처음에 왜국에서 들어왔다. 그래서 속칭 왜개자(倭芥子)라 하였다. 때로 이것을 심고는 술집에서 그
맹렬한 맛을 이용하여 간혹 소주에 타서 팔고 있는데 이를 마신 자는 대부분 죽었다고 한다”고 적고 있다.
하지만 이 당시에 고추는 아직 지금과 같이 여러 가지 음식에 쓰이거나 별도로 먹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독(毒)을
지닌 작물로 이해되었다. 이후 100여 년의 시간이 경과한 1715년에 나온 《산림경제》에서 구체적으로 고추의
재배법이 나온다. 즉 “왜초(倭椒)라고도 부르는 남초(南椒)는 2월에 적당히 마른땅에 씨앗을 심은 후4·5월 사이에
비가 내리면 옮겨 심는다. 바람을 막을 수 있는 곳에 심으면 열매가 많이 달린다”. 이를 통해 18세기 초반에는
고추가 작물로 널리 재배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시 1810년경에 나온 《규합총서》에서는 고춧가루와 함께
고추를 썰어서 김치에 사용했고, 고춧가루를 넣은 매운탕의 등장, 그리고 고춧잎을 이용해 장아찌까지 담그는
형태로 고추의 이용이 다양해진다.

  조선시대에는 고추를 고초(苦草)라고도 표기하였다. 고(苦)자가 조선시대에는 맵다는 뜻으로 쓰였던 바, 매운
고추의 특성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특성은 캅사이신(capsycine)이라는 성분 때문이다. 캅사이신은 기름의
산패를 막아주고 젖산균의 발육을 돕는 기능을 한다. 캅사이신의 함량은 부위에 따라 차이가 있어, 씨가 붙어
있는 흰 부분인 태좌(胎座)에는과피(果皮)보다 몇 배나 많으며, 씨에는 함유되어 있지 않다. 한국의 김장용 고추는
미국의 타바스코·테키산스, 일본의 다카노주메와 같은 품종보다 캅사이신은 1/3, 당분은 2배 정도 들어 있어 매운
맛과 단맛이 잘 조화되어 있다. 고추의 붉은색은 캅산틴 캅솔빈과 같은 카로티노이드계 색소 수십 종이 어울려서
나타나는 것으로, 여기에는 몸 속에서 비타민 A로 바뀌어 비타민 A의 공급원이 되는 것이 많다. 또 비타민 C의
함량이 매우 풍부한데 감귤류의 2배, 사과의 50배나 된다.